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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Seong-Lyun Kim

Art Review Contemporary Art Institute Vol.2. 2023 Summer



디지털 사일런스 예술가와 공학자의 상생 그 가능성에 대한 도전 새로운 예술적 성취 지향



지금 울산시립미술관에서는《뒤틀린 데이터Data Distorted》라는 옴니버스 형식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미술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관객이 마주하는 공간인 XR 랩에서 2023년 3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장장 6개월간 지속되는 프로젝트형 전시다. 미술관 측에서는 이 전시를, AI를 비롯한 공학기술을 예술의 수단으로 삼는 대신 첨단기술을 통해 예술적 실험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첫 번째 시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당초XR랩이 예 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도모하는 공공연구소로서 마련 됐던 것을 돌아보면 《뒤틀린 데이터》는 이러한 취지에 상당히 걸맞는 전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전시는 3명의 공학자와 3명의 예술가, 그리고 필자를 포함한 2명의 예술이론가가 연구 중심의 장기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한 결과 물이기 때문이다.

《뒤틀린 데이터》전의 탄생은 2020 년에 시작된 『디지털 사일런스』 프로젝트에서 연원했다. ‘digital silence’ 는 연세대 교수 김성륜이 제안한 공학적 개념이다. 그는 엔지니어가 복잡한 수식을 완벽하게 사용 하고 오류 error 와 실수를 최소화하는 것만이 반드시 최선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으로부터 이 개념을 착상했다. 김성륜에 따르면 AI, 로보틱스, 스마트 팩토리에서 사용되는 알고리즘에서 오류를 최소화 한다는 목표가 오히려 시스템을 불안 정하게 만들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류를 도입하고, 때로는 AI가 학습한 데이터를 일부 누락하고, 또 알고리즘의 복잡도를 줄임으로써 최적화된 결과값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학적 과정을 거치면서 김성륜은 불완전성의 역설적 가능성을 엿 보았고, 공학적 메커니즘의 매우 유용한 참조물로서 예술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가 퓨즈아트프로젝트의 디렉터 주경란에게 협력 작업을 요청 한데는 이러한 실제적 요구가 있었다고 하겠다. 뉴미디어아트에 특화된 일련의 기획을 진행해온 주경란은 연세대 교수들로 구성된 공학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미디어아티스트와 이론가를 물색했고, 그 결과 현재의 협업팀이 구성되었다. 『디지털 사일런스』팀이 지난 3년여 동안 연구와 토론, 그리고 작품의 구현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 쳐 얻어낸 성과를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한 것이 《뒤틀린 데이터》 전시다.


『디지털 사일런스』의 공식적인 첫 행사는 2020년 8월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개최한 온라인 세미나였다. 공학계에서는 연세대 교수 김성륜과 채찬병이, 예술계에서는 주경란, 미디어아티스트 배재혁, 김현주가 발표자로 참여했다. 첫 만남인 만큼 주경란은 20세기 중반이후 예술과 테크놀로지가 협력해온 역사를 소개했고, 김성륜은 디지털 사일런스의 정의를 제시하는데 주력했다. 그가 제시하는 디지털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일 수도 있지만, 위에 말한 것처럼 대개는 의도적인 행동에 가깝다. 다시 말해 엔지니어가 유용하고 쓸모 있는, 나아가 더 ‘건강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오류를 도입하고 누락과 변이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해 11월에는 ‘디지털 사일런스’의 주요 면모 가운데 노이즈의 무작위성randomness 에 초점을 맞춘 두 번째 세미나가 열렸다. 필자도 예술계 인사로서 참여한 이 행사에서는 한윤정, 권병준 작가 가 각자 작품세계를 소개했고, 김성륜, 채찬병 교수가 무작위와 노이즈에 대한 공학적인 접근에 관해 발표 했다.


연속적인 세미나의 소기의 성과는 예술가와 공학자가 서로의 작업의 세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성륜, 채찬병 교수가 예술 협업에 열의를 보이고, 같은 대학에 재직중인 이승아 교수도 합류하여 든든한 기술 지원군을 꾸린 2021년부터는 공학자 1인과 예술가 1인(팀)의 협업을 추진 하는 비공개 세미나를 이어나갔다.


배재혁(팀보이드)은 무렌즈 카메라 기술을 연구 개발 중인 이승아와 팀 을 이뤄 <기계로부터>라는 작품을 완성했고, 지난 3월 울산시립미술관 XR 랩에서《뒤틀린 데이터》전의 문호를 열었다. 렌즈대신 노이즈필터를 사용하는 무렌즈 카메라 기술은 팀보이드의 로봇팔과 만나 새로운 예술적 성과를 이뤄냈다. 팀보이드는 필터링 된 이미지가 AI에 의해 재해석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가 창발하는 과정을 키네틱한 설치로 선보였다.


뒤이어 한윤정과 김성륜으로 구성된 두 번째 팀의 전시가 지난 5월 초에 시작되어 6월 25일까지 지속되었다. 최근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주목해온 한윤정은 환경오염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플라스틱 풍경: 이면의 세계>라는 제목의 전시를 진행했다. 김성륜과 한윤정은 세계의 이면을 구현하기 위해 ‘역방향 스타일 트랜스퍼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사용했는데, 그 결과 생성된‘뒤틀린 데이터’의 이미지는 관객을 압도하는 몰입형 3D 공간을 창출해냈다. 7월 초 오픈하는 지하루와 채찬병의 <얽힘>전은 《뒤틀린 데이터》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오랫동안 디지털 환경 안에서 스스로 생성, 진화하는 인공 생태계를 구현해온 지하루와 웨이크필드의 인공 자연 Artificial Nature, 약칭 AN 팀은 이번 전시에서 채찬병과 더불어 ‘주의 attention 기반 신경망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나무의 가지와 뿌리,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서식하는 균류들 간의 동시다발적 얽힘, 즉 관계 맺기를 시각화하여 보여 줄 것이다.


미학을 연구하는 필자는 이 융복합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디지털 사일런스’가 인문학과 예술에 어떤 의미 있는 통찰을 줄 수 있는지 줄곧 생각해 왔다. 『디지털 사일런스』 는, 한 공학자의 제안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공학적 필요의 충족보 다는 새로운 예술적 성취를 지향하고있다. 다시 말해 공학자가 요소 기술 elemental technology 을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한명의창작자로서 브레인 스토밍부터 작품의 완성까지 모두 참여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 중 하나다.


예술가와 미학자에게 오류, 소음, 우연, 무작위는 제법 친숙한 것이다.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우연히 벽에 생긴 얼룩에서 인간과 자연의 형상, 그리고 전쟁의 장면을 착상 했고, 미켈란젤로는 미완성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 가깝게는 다다와 초현실주의자들, 또 존 케이지를 비롯 한 네오아방가르드들이 침묵(또는 공백), 오류, 우연을 작업의 주요 방법으로 채택하곤 했다. 그런데 디지털 ‘침묵’은, 근본적인 차이는 아닐지라도 단순한 침묵과 동일하다고 할 수 는 없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서, 가령 데이터를 입력하면서 의도적인 소거, 누락, 변이가 필요하다는 것은 정보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동시대의 일상적·산업적 환 경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첨단기술 high-tech 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부터 완전성과 불완전성이 그다지 구분되지 않는다는 통찰까지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디지털 사일런스』의 당초 목적이 공학자와 예술가가 상생하는, 시쳇말로 상호 ‘윈윈하는’ 것이 었는데, 《뒤틀린 데이터》전은 그 가능성을 타진할 귀한 기회였던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다. 울산시립미술관과 퓨즈 아트프로젝트의 관계자들이 많은 수고를 하고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의 기획을 그대로 실현하지는 못했다.


한윤정 작가와 지하루 작가는 처음에 인터랙티브 작업으로 완성하여 관객 참여형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었 다. XR랩의 규모를 고려할 때 인터랙티브 설치는 쉽지 않은 일이긴 했으나, 예술가가 작품 내용을 일부 수 정해야 했던 것은 다시 생각해도 안타깝다. 지하루 작가의 경우 채찬병 교수가 연구, 개발 중인 후각 데이터 통신기술을 활용하고자 했었으나 이번에는 불발에 그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뒤틀린 데이터》 전시가 마지막 순서까지 무사히 진행된 것만으로 도 『디지털 사일런스』 팀에게는 커다란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시에서 시도하지 못한 것, 그리고 협업에서 미진했던 점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둬도 괜찮을 것 같다. 향후 이 예술과 공학의 협동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화할지 막연하게나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강미정(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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